오늘은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이며, 광주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에서 제46주년 기념식과 다양한 시민 행사가 동시에 열린다. 참석 예상 인원은 3천 명을 넘으며,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공식 기념식을 포함해 전야제, 러닝 대회, 떡 나눔 등 모두 7가지 주요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운영 중이다. 특히 18일 당일에는 시내버스와 지하철, 도시철도가 전면 무료로 운영되며, 민주묘지행 518번 버스도 증차 운영한다.
1980년 5월 18일 시작된 이 운동은 광주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북 김제 출신 전북대 재학 중인 이세종 씨가 전국 최초로 희생된 인물로 기록되며 전국적인 확산의 출발점이 됐다. 당시 계엄군의 무자비한 무력 진압으로 수많은 시민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이는 지금도 5·18 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숨 쉬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이룬다. 올해는 원형 복원된 옛 전남도청에서 정부 기념식이 열리는 등 역사의 장소가 그대로 재현된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글에서는 ▲기념식과 전야제 현장 상황 ▲시민 참여형 실천 행사 ▲청년 세대의 기록 부흥 움직임 ▲역사왜곡에 대한 반성과 조치 ▲전북지역의 소외된 기록 공유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할 일 등 6가지 실질적 쟁점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분석한다.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오늘 광주에서 벌어지는 3천 명의 기억과 실천
1. 제46주년 기념식은 전통과 변화의 공간에서 열린다

오늘 정부 기념식은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과 원형 복원된 옛 전남도청에서 오전 10시에 동시에 개최된다. 전날인 17일 저녁 6시부터 열린 전야제에는 올해도 전국에서 3천여 명이 모여 민주광장을 가득 메웠고, 오월 풍물단 공연부터 젠더폭력 치유 이야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18열매’ 김복희 대표는 무대에서 과거사 속 젠더폭력 문제를 알리고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많은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기념식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46년 전의 공식 기록이 부족하고 왜곡된 점을 바로잡는 현장이 되고 있다. 옛 전남도청은 2023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공사에 들어가 청사 내부 구조와 외관을 1980년 당시 상태로 복원했으며, 올해 처음 기념식 장소로 공식 선정되었다. 이 장소는 계엄군이 탱크로 진입해 군사 작전의 지휘본부로 쓰인 현장이자, 시민이 직접 저항의 중심지로 탈환한 장소이므로, 단순한 기념 공간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물리적 증거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의 기념이 항상 순탄하지는 않다. 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이 올해 기념식 불참을 결심한 배경에는, 정치적 논란 가능성과 기념식 당일 예상되는 시민 집단 간 견해 충돌이 존재한다. 그는 인권위 소속으로서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으나, 이는 오히려 5·18 기념이 아직도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운 ‘분수령’이라는 점을 반증한다. 기억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법적·교육적·공공적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할 권리다.
기념식은 옛 전남도청 복원을 기점으로 장소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되새기는 현장이 됐다. 전야제에 3천 명이 참석한 것을 보면, 시민은 여전히 기념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으며, political risk가 존재하더라도 공적 장소에서의 기억이 여전히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2. ‘0원’ 버스와 518개 떡: 시민이 직접 만드는 실천 기억

광주시는 5·18 기념일인 18일 하루 동안 시내버스와 지하철, 도시철도, 교통약자 이동지원차량 모두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교통비를 아끼게 해주는 정책이 아니라, 시민이 편리함을 누리며 자연스럽게 5·18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 유도 장치’ 역할을 한다. 특히 민주묘지행 518번 버스는 증차 운영하며, 참배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대를 고려해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광주가 시민과 함께 기념일을 지켜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조치다.
더불어 단호박설기 운영진은 ‘오월의 기억’을 상징하는 518개의 떡을 무료로 나누는 행사를 준비했다. 떡 하나하나가 ‘5·18’이라는 숫자와 의미를 담은 개별 희생자를 상징하며, 단순한 배부가 아니라 시민의 기억을 되살리는 은유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참여한 시민들은 떡을 나눠가며 인사도 건네고, 함께 조용한 묵념을 드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기념은 절차적 기능을 넘어, 일상의 나눔과 공감이라는 매우 인간적인 차원에서 구현되고 있다.
이런 실천은 시민의 자발성이 강조되는 반면, 공공기관의 협력이 뒷받침된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교통 카드 승차 시 ‘0원’이 적용되는 것은 정부와 광주시의 협의를 통해 즉각 실행된 것으로, 정책적 의지가 구체적 툴로 변환된 사례다. 이처럼 오늘날 5·18은 ‘기억’을 말로만 전달하지 않고, 시민의 일상과 인프라를 직접 바꾸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이동수단과 식사 하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의 기억은 버스 하나, 떡 한 알에서 실천되고 있다. 광주시의 무료 교통 정책과 518개 떡 나눔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과 기념의 경계를 없애는 ‘일상적 저항’의 방식이다.
3. 1200명의 청년이 달리는 ‘RUN 5·18’, 과거를 몸으로 다시 읽다

오늘 전남대학교 운동장 인근에서 1200명의 청년들이 ‘RUN 5·18-도청가는 길’에 나섰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계엄군과 맞서 도시 전체를 뛰어다녔던 행보를 재현하는 러닝 행사로, 기획부터 연출까지 2030 세대 청년 7명이 직접 맡아 운영했다. 참가자들은 가슴에 ‘518’ 문양을 새긴 팔찌를 두르고, 5·18 길을 따라 518미터 코스를 달리며 희생자에게 헌화하고, 도청 도착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뛰어가는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외쳤다.
이번 러닝은 과거 기념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기존에는 ‘기억’이 정형화된 기념식을 통해 주입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에는 청년들이 스스로 장소와 시간, 거리를 재해석해(신체적 경험)을 통해 기억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도청가는 길’은 계엄군의 무력 진압이 집중된 구간이었고, 지금도 도로명은 여전히 ‘민주화의 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경로를 달리는 행동 자체가,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몸소 되묻는 질문이 된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청년들이 과거사를 ‘부정하지 않고’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2030 세대는 5·18을 교과서 속 역사가 아닌, 자신의 삶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과거사에 대한 세대 간 격차를 해소하고, 기억의 주체를 늘리는 실질적 전략이다. 솔직히 말하면, ‘역사’라는 이름으로 외면당했던 주제를, 청년들은 운동장에서 뛰는 한 걸음으로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청년 1200명이 달리는 ‘RUN 5·18’은 기념이 아닌 기동이며, 장소와 몸의 기억을 통합한 체험이다. 이는 역사가 ‘지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임을 증명하는 실천이다.
4. ‘산자여 따르라’는 함성에서 오늘의 침묵까지: 기억의 이중성
전야제 현장에서 들려온 ‘산자여 따르라’는 함성은,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쏜 초동 명령을 되집어내는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이 말 한 마디 뒤에 수백 명의 희생이 숨어있고, 그 말이 나온 순간부터 광주의 거리는 전장이 됐다. 그 함성은 지금도 5·18 기념관 전시물과 기록물, 다큐멘터리 속에서 반복해서 울려 퍼지며,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말의 무게’를 상기시킨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는 기념일이 되풀이될수록 기억이 ‘일상화’되는 위험도 겪고 있다. 떡을 나누고, 버스를 무료로 운영하고, 러닝을 하더라도, 기억이 단순히 쇼핑처럼 소비되면 곧장 역사 왜곡의 틀 안으로 빠져들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언론이나 정당은 5·18을 ‘과거의 사건’으로 축소하거나, 정치적 도구로 삼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이는 기념일이 그만큼 여전히 민감한 지점임을 뜻한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디에 놓여야 올바를까? 기억은 감정적 추모가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문제’로서, 매일매일의 판단과 선택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에서 희생자 가족을 조명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참여하거나, ‘518 희생자 명예회복’ 관련 법안에 관심을 두는 것 하나도, 진짜 기억이다. 우리는 기념일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364일의 잊음 속에서도 오늘의 선택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힘을 기르는 중이다.
‘산자여 따르라’는 함성은 과거의 공포를 기억하게 하면서도, 오늘의 침묵과 외면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려준다. 기억은 ‘기념일’에만 머물러선 안 되고, 일상의 판단과 실천으로 계속 재생산되어야 한다.
5. 전북 ‘최초 희생자’ 이세종의 이름, 여전히 ‘변방’인 이유
전북 김제 출신이자 전북대 재학생이었던 이세종 씨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계엄군이 첫 발포를 시작한 당일, 현장에서 최초로 희생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광주로 올라가 민주화 시위에 동참하다가 전장에 휘말려 사망했고, 사망 시점은 광주에서의 5·18 항쟁과 시간상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이름은 ‘전국 최초의 5·18 희생자’로서, 지역 사회에 기억되어야 할 역사적 증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세종 씨의 이름은 여전히 전북 지역에서 제대로 홍보되지 않고, 기념 행사나 교육 자료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상태다. 전북은 5·18의 ‘발화 지점’이자 ‘직접적 희생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인식에서 ‘변방’으로 남아 있다. 이는 지역 간 기억의 격차가 여전히 심각함을 보여주며, 5·18이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 세부화는 광주 중심의 기념 문화가 오히려 타 지역 시민의 역사적 책임을 약화시키는 이중적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광주가 고통받은’ 사건이 아니라, ‘모든 지역 시민이 함께 부딪혔던’ 민주주의의 실험이라는 관점에서 전북을 포함한 전국적 시각을 되살려야 한다. 이세종의 이름을 다시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지역 자긍심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전체성을 되찾는 첫걸음이다.
전북 김제 출신 이세종 씨는 전국 최초의 희생자로 기록되나, 여전히 지역에서 외면받고 있다. 5·18은 광주만의 사건이 아니라, 전국적 책임과 기억이 필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6. ‘서훈’ 문제,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을 진압한 경찰 중 일부에 대해 내려진 ‘공로 훈장’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에 대한 철거 요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5·18 관련 블로그 및 단독 보도에 따르면, KBS 단독 보도에서는 ‘5·18 진압 공로 훈장’ 수여자 중 상당수가 당시 민간인 살해를 명령하거나 보복적으로 발포한 직원이었음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민주화운동 역사연구소 등은 ‘서훈 취소’를 요청하며, 경찰청의 자발적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서훈 문제는 단순한 ‘과거사 재조명’을 넘어, 오늘날 경찰 기관이 ‘민주주의 수호 기관’으로 재정립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내부 반성 과정이다. 2026년 현재, 경찰 내부의 서훈 박탈 요청에 대한 공식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며, 일부에서는 ‘역사 왜곡’이란 주장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은폐하는 것이 현재의 신뢰를 만들지 않음은 이미 여러 사례에서 증명바 lain되었다. 민주경찰을 원한다면, 먼저 ‘공로’로 삼은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바로 오늘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먼저, ‘서훈 취소’ 청원 서명이나 정책 제안에 참여하는 것 하나로도 충분하다. 더 나아가, 지역 경찰서와의Dialogue를 요청하거나, 교육 현장에서 경찰력 개입에 대한 비판적 역사 교육을 요구하는 것도 실천이다. 우리는 그때의 폭력이 오늘도 재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 기억을 단순한 추모가 아닌, 제도적 재점검의 도구로 써야만 한다.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막 과제다.
‘5·18 진압 공로 훈장’은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서훈 취소는 경찰의 민주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이는 과거에 대한 책임이 아닌, 오늘의 현실적 실천이다.
핵심 요약
자주 묻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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